- [성경본문] 누가복음17:11-19 개역개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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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 예수께서 예루살렘으로 가실 때에 사마리아와 갈릴리 사이로 지나가시다가
12. 한 마을에 들어가시니 나병환자 열 명이 예수를 만나 멀리 서서
13. 소리를 높여 이르되 예수 선생님이여 우리를 불쌍히 여기소서 하거늘
14. 보시고 이르시되 가서 제사장들에게 너희 몸을 보이라 하셨더니 그들이 가다가 깨끗함을 받은지라
15. 그 중의 한 사람이 자기가 나은 것을 보고 큰 소리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며 돌아와
16. 예수의 발 아래에 엎드리어 감사하니 그는 사마리아 사람이라
17.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열 사람이 다 깨끗함을 받지 아니하였느냐 그 아홉은 어디 있느냐
18. 이 이방인 외에는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러 돌아온 자가 없느냐 하시고
19. 그에게 이르시되 일어나 가라 네 믿음이 너를 구원하였느니라 하시더라
제공: 대한성서공회
눅17:11-19 “믿음을 받은 자는 주님을 알아보고 찾아온다.” 2022. 10. 9
믿음으로 이끄시는 주님! 표적에 도달하게 하시는 하나님의 일하심을 봅니다.
예루살렘을 향해 길을 가시는 예수님을 보고 열 명의 나병환자들이 멀리서 외쳤습니다. “예수 선생님이여 우리를 긍휼히 여기소서.”라고 말입니다. 이 말을 들은 예수님은 “가서 제사장들에게 너희 몸을 보이라.”는 말씀으로 응대해 주셨습니다.
율법에 의하면 나병환자는 성 밖으로 나가 살아야 했고, 혹시 건강한 자들이 자기 가까이 다가오면 ‘부정하다’고 외쳐 스스로 자신의 신분을 밝혀야 했습니다. 본문에 등장하는 열 명의 나병환자가 길을 가시는 예수님을 멀리서 보고 외친 이유가 이런 규례 때문이었습니다. 그런데 놀라운 것은 예수님은 그들을 부정한 자라고 외면하거나 무시하지 않았고 오히려 그들의 질병을 고쳐 주셨습니다.
사건의 순서로 보면 나병환자가 예수님께 ‘긍휼히 여기소서.’라고 먼저 요청했고, 이에 대해 예수님은 ‘제사장들에게 너희 몸을 보이라.’고 하셨고, 예수님 말씀에 따라 나병환자가 제사장을 향해 가다가 나병이 깨끗함을 받았습니다.
그런데 여기에서 주목할 대목은 예수님의 말씀이 당시 율법을 어기는 지시를 하셨다는 것입니다. 나병환자가 제사장을 찾아갈 때는 병이 다 나아 깨끗하게 되었음을 확인받기 위해 찾아가는 것이지 병을 가진 상태에서 치료받기 위해 나아갈 수는 없었습니다(레 14장 참고). 그런데 예수님은 나병을 앓고 있는 자에게 제사장에게 가서 너희 몸을 보이라고 하셨습니다.
● 왜 예수님은 율법에 따르지 않고 순서를 뒤바꿔 명령을 내리신 것일까요?
그렇지 않아도 당시 종교 지도자들은 예수님의 약점을 잡아 넘어뜨리려고 혈안이 되어 있는데 그런 자들을 전혀 의식하지 않고 고의로 율법을 어기는 이유가 무엇일까요? 어차피 나병환자를 고쳐주시려면 먼저 그들 몸을 깨끗하게 하신 후에 ‘제사장에게 가서 너희 몸을 보이라.’고 하시면 아무 문제도 없을 것인데, 순서를 뒤바꾼 이유가 무엇일까요?
그것은 사람들이 율법을 오해하고 있음을 지적하기 위함입니다. 율법은 예수님이 어떤 분인지를 보여주는 것이지 율법 자체가 의미 있는 것이 아닙니다. 다시 말하지만 나병환자가 제사장에게 가서 자기 몸을 보이는 경우는 깨끗함을 받았기에 그것을 최종적으로 확정받기 위함입니다.
구약의 제사장은 질병을 깨끗케 할 능력도 없고, 죄를 용서할 권한도 없습니다. 그러나 진짜 제사장이신 예수님은 죄를 사하시고 질병을 깨끗케 하시는 분입니다. 즉 예수님이 진짜 제사장이란 사실을 이 사건을 통해 보여주셨습니다. 나병환자들은 제사장이신 예수님께 자신의 몸을 이미 보였고, 예수님은 그에게 온전하게 되었다고 선언하셨습니다.
더 근본적인 이야기를 해보고자 합니다. 예수님과 나병환자의 만남은 죄를 용서하시는 주님과 죄인의 만남입니다. 구약에서 죄인의 모습을 대표적으로 보여주는 두 질병이 나병과 유출병인데, 문둥병은 외형적으로 보이는 질병이고 유출병은 내면적 질병입니다. 즉 인간의 안과 밖을 가릴 것 없이 전부가 죄로 뒤덮여 있음을 알려주신 것입니다.
나병환자와 예수님의 만남은 더러운 죄인과 죄를 용서하시는 예수님과 만남입니다.
♣마9:12-13> 12예수께서 들으시고 이르시되 건강한 자에게는 의사가 쓸 데 없고 병든 자에게라야 쓸 데 있느니라 13너희는 가서 내가 긍휼을 원하고 제사를 원하지 아니하노라 하신 뜻이 무엇인지 배우라 나는 의인을 부르러 온 것이 아니요 죄인을 부르러 왔노라 하시니라 “는 예수님의 말씀이 온전히 현실화 된 장면입니다.
그런데 문제는 온전하게 된 열 명 중에 사마리아인 한 명만 예수님께 돌아와 감사를 드렸다는 것입니다. 이 일에 대해 예수님은 물으셨습니다. “열 사람이 다 깨끗함을 받지 아니하였느냐 그 아홉은 어디 있느냐”
나병환자는 자신의 몸이 깨끗하게 되어 건강한 모습으로 가족들과 함께 사는 것을 간절히 원했습니다. 그런데 그 소원이 성취되었으니 그들은 기뻐 가족에게로 달려갔을 것입니다. 그런데 사마리아인은 예수님께 돌아와 발아래 엎드려 감사를 드렸습니다.
● 여기서 아홉과 한명은 어떤 차이가 있을까요?
깨끗하게 병 고침의 기적을 체험한 사람은 정상적인 상태로 살아갈 수 있습니다. 그러나 믿음을 받지 않은 구원이 없는 사람들입니다.
그러나 한명의 병 고침을 방고 기적을 체험한 사람은 표적의 주님을 만납니다. 진정한 생명을 얻고 구원받은 자로서 주님의 십자가 안으로 들어온 자입니다.
나병환자의 입장에서는 자기 몸이 온전케 되는 것보다 더 중요한 일은 없다고 여겼습니다. 그런데 깨끗하게 된 자 중 한 명은 예수님께 돌아왔습니다.
오늘날을 사는 사람들은 성질이 급하기 때문에 한 번 정했으면 예수님이 피로 죄 용서 받았으면 다 구원받았지 뭐 또 피를 이야기하고 십자가를 거추장스럽게 이야기하느냐?
십자가를 이야기하는 사람들은 이 십자가의 완전성! 예수님이 대제사장으로서 영원한 그 속죄 제사를 드린 것을 부정하는 자다. 이렇게 공격을 하거든요.
이 열 명이 가는 중에 제사장에게 가는 중에 깨끗함을 입었어요. 그러면 율법대로라면 어떻게 해야 되죠? 율법대로라면 깨끗함을 입었으면 예수님의 말씀대로 제사장에게 가서 몸을 보이고 절차대로 산 새 두 마리를 취하여서 한 마리는 흐르는 물에 잡아서 피를 흘리고 산새는 어떻게? 그 피에 담기게 했다가 날려주고 일곱 번 뿌려서 정하다 정하다 하고 그 절차를 진행해야 되는데 10명이 두 갈래로 나눠집니다.
나눠지는데 9명은 제 갈 길을 갔어요. 제사장에 갔다는 말씀이 없습니다. 그들의 소원은 딱 한 가지입니다. 문둥병에서 깨끗함을 입는 거예요. 그래서 나았으니까 됐잖아요. 더 이상 예수님과 관계 맺을 이유가 없잖아요.
오늘날 이 같은 구원파와 같이 믿는 것이 한국교회에 쫘악~ 퍼져있어요. 십자가의 피로 죄 용서받았으니까 십자가와 거리 두기 하는 겁니다. 자기들의 소망을 이루었으니까 예수님께 돌아가기보다는 제갈 길로 갑니다.
그런데 그 중에 한 사람인 이방인 사마리아 사람! 유대인들 입장에서는 이방인이죠. 한 사람이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면서 예수님께 와서 발 앞에 이렇게 엎드리면서 사례합니다. ‘너무 감사합니다’라고 이렇게 감사를 하죠.
오늘 우리들이 읽은 레위기 14장 본문과 누가복음 17장을 연결해 보면, 모든 율법을 예수님 몸에 쏟아 부어버려요. 쏟아 부어지면 예수님의 죽으심이 드러나게 되는 거죠.
이 문둥병자를 통하여서 예수님이 죄 용서하는 분, 구원하는 분임을 소개하고 있죠.
구원은 십자가에서만 나오거든요. 그 피의 혜택을 입은 자는 구원을 얻지만 그 피의 혜택을 입지 못한 자들은 아홉 명처럼 십자가로 돌아오는 것이 아니라 예수님께 돌아오는 것이 아니라 자기의 기쁨과 행복과 영생을 찾아 자기 갈 길을 가는 겁니다.
그들은 십자가와 친밀하게 동행하기를 원치 않아요. 주님과 동행하기를 원치 않아요. 십자가 안에 머물기를 원치 않아요. 가능한 빨리 십자가 밖으로 나가고 싶은 겁니다. 그런 자들이 바로 긍휼함을 입지 못한 자들입니다. 이제 십자가는 미련한 것이 돼버린 거죠.
그러나 성도는 십자가의 피를 증언하기 위해서 인생을 살아가는 자입니다. 그래서 그 형편과 모습이 달라도 십자가의 피를 자랑하라고 날마다 우리는 육체 가운데 살면서 죄를 고백합니다. .
병 나은 것이 전부일까요? 진정 주님이 어떤 분인지 알고 주님께 찾아온 것이 온전한 것입니다. 사마리아인에게 “네 믿음이 너를 구원하였느니라.” 너에게 준 믿음이 너를 온전케 했다는 것입니다.
주님이 주신 선물(믿음) 때문에 구원이 발생합니다. 그러니까 시작부터 끝까지 주님에 의해 모든 것이 이뤄집니다. 주님으로부터 믿음을 선물 받은 자가 주님과 더불어 영생할 자, 즉 구원 받은 자입니다.
병 나은 것으로 기뻐할 일이 아니라 병을 낫게 하신 분이 누구인지, 그리고 내가 얼마나 완악한 죄인인지 알아야 합니다. 율법을 열심히 지켜 구원 얻으려는 자들을 향해 주님은 믿음을 선물로 제공할 때만 구원된다는 것을 선포하셨습니다.
구원받은 한 사람 사마리아 나병환자는 표적인 십자가에 도달하였습니다. 왜 나았는지를 알게 되었습니다(사53:4-6). 앞에서 피 흘리신 주님을 보았습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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