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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0213 온가족예배_왕하6:1-14[깨끗하게 하는 곳으로 가자]
한광수 담임목사 2022-02-13 추천 1 댓글 0 조회 1114
[성경본문] 열왕기하5:1-14 개역개정

1. 아람 왕의 군대 장관 나아만은 그의 주인 앞에서 크고 존귀한 자니 이는 여호와께서 전에 그에게 아람을 구원하게 하셨음이라 그는 큰 용사이나 나병환자더라

2. 전에 아람 사람이 떼를 지어 나가서 이스라엘 땅에서 어린 소녀 하나를 사로잡으매 그가 나아만의 아내에게 수종들더니

3. 그의 여주인에게 이르되 우리 주인이 사마리아에 계신 선지자 앞에 계셨으면 좋겠나이다 그가 그 나병을 고치리이다 하는지라

4. 나아만이 들어가서 그의 주인께 아뢰어 이르되 이스라엘 땅에서 온 소녀의 말이 이러이러하더이다 하니

5. 아람 왕이 이르되 갈지어다 이제 내가 이스라엘 왕에게 글을 보내리라 하더라 나아만이 곧 떠날새 은 십 달란트와 금 육천 개와 의복 열 벌을 가지고 가서

6. 이스라엘 왕에게 그 글을 전하니 일렀으되 내가 내 신하 나아만을 당신에게 보내오니 이 글이 당신에게 이르거든 당신은 그의 나병을 고쳐 주소서 하였더라

7. 이스라엘 왕이 그 글을 읽고 자기 옷을 찢으며 이르되 내가 사람을 죽이고 살리는 하나님이냐 그가 어찌하여 사람을 내게로 보내 그의 나병을 고치라 하느냐 너희는 깊이 생각하고 저 왕이 틈을 타서 나와 더불어 시비하려 함인줄 알라 하니라

8. 하나님의 사람 엘리사가 이스라엘 왕이 자기의 옷을 찢었다 함을 듣고 왕에게 보내 이르되 왕이 어찌하여 옷을 찢었나이까 그 사람을 내게로 오게 하소서 그가 이스라엘 중에 선지자가 있는 줄을 알리이다 하니라

9. 나아만이 이에 말들과 병거들을 거느리고 이르러 엘리사의 집 문에 서니

10. 엘리사가 사자를 그에게 보내 이르되 너는 가서 요단 강에 몸을 일곱 번 씻으라 네 살이 회복되어 깨끗하리라 하는지라

11. 나아만이 노하여 물러가며 이르되 내 생각에는 그가 내게로 나와 서서 그의 하나님 여호와의 이름을 부르고 그의 손을 그 부위 위에 흔들어 나병을 고칠까 하였도다

12. 다메섹 강 아바나와 바르발은 이스라엘 모든 강물보다 낫지 아니하냐 내가 거기서 몸을 씻으면 깨끗하게 되지 아니하랴 하고 몸을 돌려 분노하여 떠나니

13. 그의 종들이 나아와서 말하여 이르되 내 아버지여 선지자가 당신에게 큰 일을 행하라 말하였더면 행하지 아니하였으리이까 하물며 당신에게 이르기를 씻어 깨끗하게 하라 함이리이까 하니

14. 나아만이 이에 내려가서 하나님의 사람의 말대로 요단 강에 일곱 번 몸을 잠그니 그의 살이 어린 아이의 살 같이 회복되어 깨끗하게 되었더라

제공: 대한성서공회

왕하 5:1-14 몸을 깨끗하게 치료하시는 곳으로 가자 2022213

 

본문에 보면 나아만이라는 나병 환자가 등장합니다. 이 사람은 아람의 군대장관입니다. 아람은 강한 국가입니다. 그러한 나라의 군대장관이라면 세상의 기준에서는 성공한 사람입니다. 그러한 그가 나병이라는 엄청난 저주를 안고 살아갔던 것입니다.

 

여러분 같으면 비록 나병에 걸렸어도 군대장관으로 살기를 원합니까? 아니면 군대장관이 아니더라도 나병이 아닌 깨끗한 몸으로 살기를 원하십니까?

 

사실 사람들이 나아만 장군을 어떻게 대했겠습니까? 군대장관이라는 권력 때문에 나아만에게 머리는 숙일지언정 가까이 하려고는 하지 않을 것입니다.

당시의 나병은 저주 받은 병이었는데 저주 받았다고 생각하는 사람과 가까이 하려고 하겠습니까? 따라서 비록 군대장관으로써 권력을 누렸다고 해도 나아만은 행복한 삶은 아니었을 것입니다.

이런 나아만에게 이스라엘에서 포로로 잡아온 작은 계집종 하나그의 여주인에게 이르되 우리 주인이 사마리아에 계신 선지자 앞에 계셨으면 좋겠나이다 그가 그 나병을 고치리이다”(3)는 말을 합니다.

나아만이 이 얘기를 왕에게 고하자 아람 왕은 이스라엘 왕에게 그 글을 전하니 일렀으되 내가 내 신하 나아만을 당신에게 보내오니 이 글이 당신에게 이르거든 당신은 그의 나병을 고쳐 주소서 하였더라”(6)라고 쓴 편지와 함께 은 십 달란트와 금 육천 개와 의복 열 벌을 가지고 가게 합니다.

 

그런데 아람 왕의 편지를 읽은 이스라엘 왕그 글을 읽고 자기 옷을 찢으며 이르되 내가 사람을 죽이고 살리는 하나님이냐 그가 어찌하여 사람을 내게로 보내 그의 나병을 고치라 하느냐 너희는 깊이 생각하고 저 왕이 틈을 타서 나와 더불어 시비하려 함인줄 알라 하니라”(7)는 반응을 보입니다.

아람 왕은 단지 자신의 근대장관의 나병을 고쳐달라는 부탁이었을 뿐인데, 이스라엘 왕은 아람이 자신들을 공격하기 위해 시비를 거는 것으로 착각한 것입니다.

이스라엘 왕은 아람의 왕의 편지를 받고 하나님을 생각한 것이 아니라 자신의 능력을 생각합니다. 그래서 자신이 할 수 없는 일을 요구한 것은 자신에게 시비하기 위함이라고 단정 지은 것입니다. 사실 아람 왕은 이스라엘 왕더러 나아만의 나병을 고쳐달라고 한 것이 아니라 이스라엘에 있는 선지자에게 부탁해서 고쳐달라고 한 것입니다.

 

그런데 이스라엘의 왕은 하나님도 선지자도 생각하지 않습니다. 다만 이 일을 내가 어떻게 해결해야 하는가에만 몰두하고 내가 할 수 없다는 것으로 고민한 것입니다.

어린 계집종은 사마리아에 선지자가 있다고 말했습니다. 우리는 이런 생각을 할수도 있습니다. 이스라엘의 왕에게 갈 필요가 없이 곧 바로 사마리아에 있는 엘리사를 찾아가도 되지 않았겠습니까?

 

그런데 굳이 이스라엘의 왕에게 찾아가게 하셔서 이스라엘의 왕으로 하여금 고민과 번민에 빠지게 한 것은 무엇입니까?

이스라엘이 신앙적으로 어떤 상태에 있는가를 드러내시는 것이고, 이스라엘이 살 수 있는 길이 무엇인가를 보여주고자 하신 하나님의 의도 입니다.

 

나병을 치료하는 방법은 무엇입니까?

 

엘리사가 나아만에게 제시한 방법은 요단강에 몸을 일곱 번 씻으라는 것이었습니다(10). 이러한 엘리사의 지시에 대해 나아만은 “11나아만이 노하여 물러가며 이르되 내 생각에는 그가 내게로 나와 서서 그의 하나님 여호와의 이름을 부르고 그의 손을 그 부위 위에 흔들어 나병을 고칠까 하였도다 12다메섹 강 아바나와 바르발은 이스라엘 모든 강물보다 낫지 아니하냐 내가 거기서 몸을 씻으면 깨끗하게 되지 아니하랴”(11,12)고 화를 냅니다. 나아만은 엘리사가 직접 자신을 영접하고 여호와의 이름을 부르고 당처 위에 손을 흔들어 나병을 고쳐줄 것으로 여겼던 것입니다. 나병을 고치는 방법도 자신의 지위에 걸맞게 해달라는 것입니다. 이러한 생각(고후10:3-5)이 무너져야 삽니다.

하지만 그의 종들이 이르되 내 아버지여 선지자가 당신에게 큰 일을 행하라 말하였더면 행하지 아니하였으리이까 하물며 당신에게 이르기를 씻어 깨끗하게 하라 함이리이까”(13)는 종들의 권고를 듣고 요단강에 몸을 일곱 번 씻음으로써 나병이 나은 것입니다.

이처럼 나아만 장군의 나병이 고침 받은 이야기는 나아만 장군 한 사람의 구원 얘기가 아니라 이스라엘의 회개를 촉구하며 그들로 하여금 하나님의 긍휼과 은혜를 의지하는 순수한 신앙의 자리로 되돌리고자 하시는 하나님의 사랑을 말해주고 있습니다.

나아만에게 요단강에서 일곱 번 몸을 씻으라고 한 것도 바로 그런 이유입니다. 요단강 건너에는 이스라엘이 있습니다. 이스라엘이 요단을 건너게 된 것은 그들의 능력이 아니라 희생의 피 때문이었습니다. 이스라엘이 요단강을 건널 때 앞세운 것은 법궤였습니다. 법궤를 앞세웠을 때 요단강 물이 말라서 건널 수 있게 된 것입니다.

법궤에는 제물의 피가 뿌려져 있습니다. 결국 그것은 하나님의 약속의 땅은 제물의 피의 은혜를 입은 자만 들어간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입니다. 이처럼 요단강 건너 약속의 땅에 거하고 있는 이스라엘은 제물의 피의 은혜와 공로로 인해서 살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그 은혜를 잊고 산다면 그것이야 말로 이스라엘다움을 잊어버린 것이 됩니다.

 

그런데 지금 이스라엘의 신앙은 이스라엘다움을 잊어버린 채 금송아지를 하나님으로 섬기는 형편이었습니다. 자신들이 어떤 존재였으며 자신들을 살리고 있는 것이 무엇인가를 잊고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요단강에 나병자인 나아만을 보내서 일곱 번 몸을 씻게 하여 낫게 하심으로써 이스라엘로 하여금 자신들의 본질을 돌아보도록 하신 것입니다.

나아만의 나병은 이스라엘이 곧 나병이 걸린 상태와 같음을 말하는 것이고, 일곱 번 씻어서 낫는 것은 하나님의 긍휼과 은혜가 이스라엘을 저주에서 구출하신다는 것을 보여주시는 것입니다.

 

일곱 번 씻게 하시는 것은 인간이 할 수 있는 일이 아니라 하나님만이 하시는 일임을 의미합니다. 일곱은 하나님이 천지를 창조하신 후에 안식하신 날로써 하나님이 모든 일을 이루셨음을 뜻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즉 일곱은 인간의 도움이나 힘을 필요로 하지 않고 오직 하나님의 은혜로 이루심을 뜻하는 것입니다.

이스라엘은 요단강에 몸을 씻는 나아만을 보면서 자신들이 바로 나병이 걸린 것과 같은 형편에 있음을 알아야 했습니다. 우리도 마찬가지입니다.

하나님의 은혜를 잊어버리고 희생의 피가 자신들을 깨끗케 한다는 것도 잊어버리고 자신들의 힘으로 살아가려고 애를 쓰고 탐심으로 살아가는 것이야 말로 하나님의 저주를 받을 이방인과 전혀 다를 바가 없음을 알아야 했습니다.

 

이처럼 자신들을 제대로 바라보게 될 때, 요단강에서 몸을 씻고 깨끗함을 입은 나아만을 바라보면서 자신들을 깨끗케 하고 살리는 것은 자신들의 힘이 아니라 다만 하나님의 은혜이며 제물의 희생의 피에 있음을 알게 되는 것입니다. 이것이 진짜 성도된 것입니다.

나아만은 종들의 충고로 인해서 자신이 군대장관이라는 것보다는 나병환자라는 것을 생각하게 됩니다. 그럴 때 관심은 군대장관의 대우를 해주지 않는 것에 있는 것이 아니라 나병이 낫는 것에 있지 않겠습니까?

이것이 성도에게 있어야 할 순수한 마음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성도가 교회에서 관심을 두어야 할 것은 나병환자라는 자기 실상입니다. 그렇지 않으면 교만 속에서 불평이 나올 수밖에 없습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세상의 지위와 가진 것에 걸 맞는 대접을 하시는 것이 아니라 나병환자에 걸 맞는 대접을 하십니다. 그것은 우리를 깨끗케 하시는 긍휼과 사랑입니다.

 

나병환자가 모였을 때 있어야 하는 관심은 무엇이 우리를 깨끗케 하느냐? 입니다

이것이 진짜 나병환자들의 모임입니다. 나병환자가 모여서 나는 목사다’ ‘나는 장로다’ ‘나는 군대장관이다라고 하고 있다면, 그것은 자기 실상을 보지 않고 있는 것이고, 따라서 희생의 피로써 깨끗케 하신 은혜에 대한 감사도 있을 수 없습니다.

우리는 깨끗한 존재들이 아닙니다. 우리의 속은 더러움으로 가득합니다. 이런 실상을 깨닫고 나는 나병병자입니다라는 고백으로 예수님께 나오는 것이야 말로 십자가의 피의 은혜만을 바라보고 의지하는 순수한 신앙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우리 병든 몸을 깨끗하게 치료하시는 곳인 십자가의 은혜를 바라보며 감사합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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