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성경본문] 데살로니가전서3:9-13 개역개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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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 우리가 우리 하나님 앞에서 너희로 말미암아 모든 기쁨으로 기뻐하니 너희를 위하여 능히 어떠한 감사로 하나님께 보답할까
10. 주야로 심히 간구함은 너희 얼굴을 보고 너희 믿음이 부족한 것을 보충하게 하려 함이라
11. 하나님 우리 아버지와 우리 주 예수는 우리 길을 너희에게로 갈 수 있게 하시오며
12. 또 주께서 우리가 너희를 사랑함과 같이 너희도 피차간과 모든 사람에 대한 사랑이 더욱 많아 넘치게 하사
13. 너희 마음을 굳건하게 하시고 우리 주 예수께서 그의 모든 성도와 함께 강림하실 때에 하나님 우리 아버지 앞에서 거룩함에 흠이 없게 하시기를 원하노라
제공: 대한성서공회
데살로니가전서 3:9-13 “감사로 마음을 전하는 기도” 2022년 11월 27일
사도 바울은 데살로니가 교회의 믿음에 대한 소식으로 크게 기뻐합니다. 바울과 실라와 함께 아덴에 머물면서 디모데를 데살로니가에 보냅니다. 그리스도의 복음을 받은 지 얼마 되지 않았는데 교회가 믿음으로 세워지는 모습을 보면서 기뻐서 어찌할 줄 모릅니다.
♣9절> “우리가 우리 하나님 앞에서 너희로 말미암아 모든 기쁨으로 기뻐하니 너희를 위하여 능히 어떠한 감사로 하나님께 보답할까”
● 바울은 왜 ‘어떠한 감사로 하나님께 보답할까’라고 말합니까?
데살로니가 교회의 믿음에 바울 자신은 교회로 인해서 말할 수 없는 큰 기쁨을 누리게 된 것을 하나님의 선물로 바라본 것입니다. 하나님께 보답하는 것이 감사 말고는 없는 것일까요? 맞습니다. 우주의 주인이신 하나님께 피조물이 무엇으로 보답할 수 있겠습니까? 우리가 무엇을 가지고 나온다고 해도 그 모든 것의 주인은 하나님이십니다. 하나님의 것을 들고 나온다고 해서 그것을 보답이라고 할 수는 없습니다(시50:8-15절).
바울이 데살로니가 성도들의 복음 관계 소식을 듣고서 모든 기쁨으로 기뻐하며 하나님께 감사하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기도는 감사로 하나님께 아뢰고 있는 것(빌4:6-7)입니다.
● 그러면서 주야로 심히 간구한다고 합니다. 그 이유가 무엇입니까?
♣10절> 데살로니가 성도들을 만나 보기를 원한다는 것입니다. 보고 싶다는 것입니다.
그러면 당장 가서 보면 되지 않습니까? 그러나 사단이 막고 있습니다. 복음이 증거되는 곳에는 언제나 대적이 있기 마련입니다. 그러면 왜 이렇게 데살로니가 성도들을 만나고자 합니까? 어떠한 대적이 유혹할지라도 믿음이 굳건히 세워지기를 원하는 것입니다.
● 기도를 누구에게 하고 있습니까?
♣11절> 이미 예수 그리스도를 하나님과 동격으로 보고 있는 것입니다. 이것은 유대인들에게 혁명적인 사건입니다. 그러나 이것은 예수님께서 부활 승천하셔서 하나님의 보좌 우편에 앉으신 것입니다. 하나님의 권세를 예수님에게 주신 것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 아버지와 주 예수 그리스도’께 기도를 드리는 것입니다.
● 그리고 그 간구의 내용은 무엇입니까? 11~13절
현대인들의 기도는 대부분 어떻습니까?
원하는 것을 자신에게 담기 위해 신의 힘을 빌리는 용도에 지나지 않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뜻이 아닌 인간의 뜻만 드러납니다. 오직 나와 내 가정, 내 자식이 잘되는 것을 위해 기도합니다. 그리고 나만 생각하는 사람이 아니라는 것을 보여주기 위해서 가끔 국가를 위해 기도하고, 교회를 위해 기도하고, 이웃을 위해 기도합니다. 물론 그러한 기도는 진정성이 결여된 기도일 뿐입니다.
그런데 사도 바울의 기도는 어떻습니까?
① ♣11절> 우리 길을 너희에게로 갈 수 있게 하시오며“ 데살로니가 성도들에게 바로 가려한다고 되는 것이 아닙니다. 데살로니가로 가기를 바울이 얼마나 원하였습니까?
살전2:18절> “그러므로 나 바울은 한번 두번 너희에게 가고자 하였으나 사탄이 우리를 막았도다” 사단이 그 길을 막음으로 가지를 못했습니다. 그래서 바울은 계속 그곳에 가기를 위해 기도합니다. 어려움 가운데 있는 성도들에게 믿음을 부요하게 하기 위한 걸음입니다. [믿음의 역사]를 보는 것입니다.
② ♣12절> 성도의 사랑이 넘치기를 기도합니다. 바울사도가 데살로니가 성도를 사랑한 것처럼 성도끼리 사랑하기를 원한 것입니다. 바울 자신이 예수 그리스도의 사랑을 받은 사람입니다. 자신은 오히려 예수 그리스도를 핍박한 자였음에도 불구하고 놀라운 사랑을 받았기에 데살로니가 성도들을 사랑하고 그러한 사랑 받은 자들은 또한 서로 사랑하여 모든 사람에게 까지 사랑이 풍성하여 넘치기를 기도하는 것입니다.
서로 사랑을 전하는 [사랑의 수고]를 위하여 기도합니다.
우리는 특별히 어떤 문제로 인하여 교인들의 관계가 멀어지고 불화가 생기게 되면 서로 사랑하게 해달라는 기도를 하게 될 것입니다. 그런데 사도는 ‘우리가 너희를 사랑함과 같이’라는 말을 앞세우고 있습니다. 사도의 사랑과 동일한 사랑이 넘치게 해달라고 합니다.
그저 모이면 아이들 교육문제, 결혼문제, 장래문제 이러한 말들보다는 이러한 사랑이 풍성하여 지려면 결국 예수 그리스도의 사랑을 알아가야 합니다. 그러므로 '서로 사랑합시다!‘라는 말 이전에 ’예수님의 사랑을 아십니까?‘ 라고 물어야 합니다. 예수님의 사랑이 있어야 사랑을 전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사랑이 없는 사람에게 어찌 요구할 수 있나요?
그러면 예수님의 사랑은 어떠한 것입니까? 우리의 죄와 허물을 따지지 않으시고 덮어주신 사랑입니다. 우리를 위해 목숨까지 내어 놓으신 사랑입니다. 우리가 이 사랑을 알고, 다스림을 받는다면 주의 사랑으로 사람을 대하게 될 것입니다. 이것으로 교회는 사랑이 넘치게 되어 있습니다.
③ ♣13절> “강림하실 때에 하나님 우리 아버지 앞에서 거룩함에 흠이 없게 하시기를“
성도의 사랑이 풍성하여 짐으로 너희 마음을 굳게 하고서,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 강림하실 때에 우리 하나님 아버지 앞에서 흠이 없게 하시도록 간구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 강림하실 때 아버지 앞에 흠 없는 거룩한 자로 서게 되는 것은 이미 예수님의 십자가로 완성된 일입니다. 즉 기도해서 응답을 받아야 하는 문제는 아닙니다. 그런데 왜 굳이 기도할 필요가 있을까요?
성도가 예수님의 피를 믿는 믿음으로 어떤 환난과 핍박과 시련에서도 예수님을 믿는 믿음으로 살게 해달라는 기도인 것입니다. 우리의 소망은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그래서 [소망의 인내]를 갖기를 기도합니다.
그러면 이러한 흠이 없이 나타나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 것입니까? 신랑 되신 예수께서 다시 오실 때에 어린 양이 되신 예수 그리스도의 보혈로 지어진 의의 옷을 입고 있어야 합니다. 그리고 이 옷이 더러워지지 않도록 잘 지키는 것입니다.
● 이처럼 사도의 기도에서 볼 수 있는 것은 무엇입니까?
감사로 시작하면서 ‘교회를 향한 사도의 간절한 마음’입니다. 그 중심에는 오직 믿음과 사랑과 소망뿐입니다. 사도에게 교회는 그리스도의 피로 세워진 그리스도의 몸이었기 때문에 그리스도의 몸이 그리스도의 몸답게 존재하는 것에 모든 관심을 두고 있습니다.
우리는 교회를 어떤 마음으로 바라봅니까? 성도님들 간에 어떤 마음을 갖고 있습니까? 진심으로 우리가 믿음으로 풍성해지고, 예수님의 사랑을 알고 그 사랑으로 다스림 받는 거룩한 백성이 다 되시기를 소망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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